2025년 들어 미국에서 GRAS 제도 개편 논의가 급격히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특히 self-affirmed GRAS 종료 가능성이 공식적으로 언급되면서, 식품첨가물·건강기능식품 원료를 다루는 기업이라면 지금부터 제도 변화를 전제로 전략을 다시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2025년 미국 GRAS 제도 개편의 핵심 흐름과 self-affirmed GRAS가 어떤 방향으로 정리되고 있는지, 그리고 수출 실무에서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정리해봤습니다.
1. GRAS 제도란?
GRAS(Generally Recognized as Safe)는 미국에서 식품 또는 특정 물질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일반적으로 안전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전통적인 식품첨가물 승인 절차 없이 사용할 수 있게 해 주는 제도입니다.기본 토대는 1958년 Food Additives Amendment이고, 이후 여러 가이드와 규정 개정이 이어져 왔습니다.
중요한 점은 GRAS가 단순 “완화된 제도”라기보다, 충분한 과학적 근거가 축적된 물질에 한해 심사 절차를 간소화해 주는 장치라는 점입니다. 문제는 이 취지가 실제 운영 과정에서 얼마나 잘 지켜졌는가, 그리고 감독·투명성 측면에서 충분했는가입니다.
현재 GRAS 관련 경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 GRAS Notification: 기업이 안전성 자료와 사용 조건을 정리해 FDA에 통보(notice)를 제출하고, FDA가 검토 후 “현재로서는 이견이 없다(no questions)” 또는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는 식의 답변을 남깁니다. 통보서와 FDA의 회신은 공개 인벤토리에 축적됩니다.
- Self-affirmed GRAS: 기업이 내부 전문가 검토 등을 통해 스스로 “GRAS 기준을 충족한다”고 판단하고, FDA에 아무 통보 없이 사용을 시작하는 경로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두 경로 모두 “전문가 판단에 기반한 안전성 확보”를 전제로 하지만, FDA 및 많은 사람들에게 자료가 명확히 공개가 되는가라는 관점에서는 차이가 매우 큽니다.
2. self-affirmed GRAS란 무엇이며 왜 논란이 되었나
self-affirmed GRAS는 말 그대로 기업이 스스로 GRAS 여부를 “확인(affirm)”했다고 간주하고 시장에 들어가는 구조입니다.
형식상으로는 전문가 패널 구성, 문헌 검토, 독성 자료 검토 등 일정한 절차를 거쳤다고 전제하지만, 외부에서는 그 과정과 결과를 들여다보기가 거의 불가능합니다.
이 때문에 여러 소비자단체와 연구자들은 self-affirmed GRAS를 두고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지적해 왔습니다.
- 감독 공백: FDA가 해당 물질의 존재 자체를 모른 채 시간이 흘러갈 수 있음
- 정보 비공개: 안전성 자료, 노출 추정, 전문가 패널 구성 등 핵심 정보가 공개되지 않음
- 검증 불투명성: 기업이 의뢰한 전문가 패널이 얼마나 독립적인지, 평가 기준이 적절한지 외부에서 확인하기 어려움
이러한 이유로 self-affirmed GRAS를 둘러싸고는 “secret GRAS”라는 표현까지 등장했습니다. 새로운 화학 물질이 사실상 공적 심사 없이 식품 공급망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는 우려가 누적된 결과입니다.
3. 미국 보건복지부, "self-affirmed GRAS 폐지 검토 지시"
2025년 3월 10일, 미국 보건복지부(HHS)는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self-affirmed GRAS 경로를 없애는 방향으로 GRAS 규정을 재검토하라”는 지시를 FDA에 내렸습니다. 보도자료의 핵심 메시지는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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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S Final Rule 및 관련 가이던스 개정 검토
현행 GRAS 규정 중 self-affirmed GRAS를 허용하는 부분을 손보고, 모든 GRAS 사용이 보다 투명한 구조 아래 놓이도록 rulemaking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입니다. -
“radical transparency” 지향
HHS는 보도자료에서 미국 소비자들이 “자신이 먹는 음식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급진적인 수준의 투명성(radical transparency)을 목표로 내세웠습니다.
이는 단순한 통보 의무를 넘어, 안전성 데이터와 평가 과정까지 공개 범위를 넓히겠다는 방향성으로 읽힙니다. -
self-affirmation 루프홀(허점) 해소
그동안 기업들이 self-affirmed GRAS를 활용해 FDA나 공중에게 알리지 않은 채 새로운 물질을 시장에 도입해 왔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하며, 이 “loophole”을 줄이거나 없애겠다고 명시했습니다.
아직 구체적인 규정 개정안이 제시된 것은 아니지만, “self-affirmed GRAS 자체를 문제로 보고 공식적으로 손보겠다”는 점이 문서에 명확히 찍혔다는 것만으로도 제도 흐름이 크게 바뀌고 있다는 신호로 볼 수 있습니다.
4. GRAS 관련 연방 법안 발의와 쟁점
행정부(HHS·FDA)의 움직임과 별개로, 2025년 11월에는 미국 상원에서 GRAS 제도와 식품첨가물 규제를 손보는 법안이 발의되었습니다.
보도와 해설을 종합하면, 이 법안은 대략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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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GRAS 사용에 대한 FDA 통보 의무화
기업이 새로운 GRAS 사용을 계획할 경우, FDA에 사전에 이를 알리고 관련 정보를 제출하도록 요구합니다. 즉, “self-affirmed GRAS만으로 시장에 들어가는 구조”를 줄이겠다는 방향입니다. -
하지만 ‘승인(approval)’이 아닌 ‘통보(notification)’ 중심
소비자단체들의 설명에 따르면, 이 법안은 엄격한 사전 승인 제도까지는 나아가지 않고 통보 중심 구조를 유지하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self-affirmed GRAS 폐지라는 HHS의 기조와는 결이 다를 수 있는 부분입니다. -
연방 기준이 주(州)법을 덮는 preemption 논란
일부 해설에 따르면, 법안에는 식품첨가물·GRAS 관련 규제에 대해 연방 기준이 주법보다 우선하도록 정하는 조항(preemption)이 포함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캘리포니아 Food Safety Act처럼 더 엄격한 주 단위 규제가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정리하자면, 행정부(HHS·FDA)는 self-affirmed GRAS 자체를 문제 삼으며 심사 강화·투명성 확대를 지향하는 반면, 일부 입법 논의는 통보 의무와 연방 기준 일원화에 방점을 찍으면서도 실제 심사 강도는 상대적으로 완화된 수준에 머무를 여지가 있습니다.
5. 소비자단체 vs 산업계: ‘투명성’과 ‘규제 일원화’ 사이
5-1. 소비자단체(CSPI)의 시각: GRAS 논쟁
Center for Science in the Public Interest(CSPI)는 최근 GRAS 제도 개편 논의를 두고 산업계와 일부 의원들이 추진하는 법안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CSPI가 공개한 글에서는, 통보 의무와 연방 기준 일원화를 내세우는 법안이 실제로는 연방 수준에서 느슨한 기준을 고착시키고, 주 단위의 더 엄격한 규제를 약화시킬 위험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특히 CSPI는 이러한 법안이 “Setting Harmonization Above Meaningful Governance and Real Additive Safety”, 즉 의미 있는 규제와 안전성 확보보다 “조화(harmonization)”를 우선시하는 법이라고 비꼬며, 약칭으로 “SHAM GRAS Act”라는 표현까지 사용하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투명성과 조화를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허점(sham)을 제도화한다”는 메시지입니다.
5-2. 산업계의 시각: 예측 가능성과 규제 일원화
반대로, 대형 식품기업과 원료업계는 주(州)마다 다른 규제가 난립하는 상황에서 연방 차원의 단일 기준을 요구해 왔습니다.
실제 실무에서 보면 같은 제품이라도 캘리포니아, 뉴욕, 다른 주의 규제가 서로 다르면 레시피·라벨·공급망을 각각 나눠 관리해야 하므로 비용과 복잡성이 급격히 증가합니다.
이런 배경에서 산업계는 다음과 같은 방향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 모든 GRAS 물질에 대한 공개 목록은 수용하되,
- 기업이 준비한 안전성 자료를 기반으로 한 자율 판정 구조는 유지하고,
- FDA 사전 승인 절차는 최소화·간소화하는 방향,
- 각 주의 별도 규제는 연방 기준으로 통일(preemption)하는 방향.
결국 소비자 보호와 산업계의 예측 가능성 사이에서 어디까지가 합리적인 균형인지에 대한 논쟁이 GRAS 제도 개편의 핵심 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6. 한국 건강기능식품·원료 기업이 체크해야 할 5가지 포인트
한국에서 기능성 원료를 개발하거나, 건강기능식품·일반식품 형태로 미국 시장 진출을 고려하는 기업이라면 다음 다섯 가지 포인트를 먼저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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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lf-affirmed GRAS 단독 전략은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
제도상 self-affirmed GRAS가 여전히 완전히 금지된 것은 아니지만, 행정부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폐지 검토를 선언한 상황입니다.
앞으로 수년 안에 규정이 바뀔 가능성을 고려하면, self-affirmed GRAS만 믿고 장기 전략을 세우는 것은 리스크가 큽니다. -
GRAS 안전성 패키지는 “언젠가 공개될 수 있다”는 전제로 설계하기
GRAS 통보와 관련 자료는 이미 상당 부분 공개 인벤토리에 쌓여 있습니다. self-affirmed GRAS 경로가 축소되고 통보 의무가 강화되는 방향으로 가면, 안전성 데이터·노출 평가·전문가 의견서 등이 외부 검토에 노출될 가능성이 더 커집니다.
“최소한의 것만 맞춰서 통과하는 자료”보다, 동료 전문가·소비자단체의 질문에도 버틸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합니다. -
연방법만 보지 말고 주요 주(州) 규제도 함께 모니터링
캘리포니아 Food Safety Act와 같이 일부 주에서는 이미 특정 첨가물 사용을 제한하거나 금지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향후 연방 법안에 preemption 조항이 실제로 포함될지 여부는 아직 확정적이지 않기 때문에, 최소한 캘리포니아, 뉴욕 등 주요 주의 법·규정은 병행해서 체크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
GRAS 전략을 제품 개발 초기 단계에서부터 반영
원료를 개발해 국내 인허가까지 마친 뒤, 나중에 미국 진출을 고민하며 GRAS를 고려하는 방식은 비용·시간·리스크 측면에서 불리합니다. 처음부터 미국 GRAS 요건과 노출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고 독성·인체적용·기전 연구를 설계하면, 나중에 GRAS 패키지를 구성할 때 훨씬 수월합니다. -
“왜 이 원료가 안전한가”를 설명할 수 있는 내·외부 문서화
단순히 시험 성적서 모음 수준이 아니라, 임상·독성·기전·노출 데이터가 서로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설명하는 서술형 문서를 내부적으로 정리해 두면 좋습니다.
향후 FDA, 고객사, 소비자단체 어느 쪽과 대화하더라도 기반 자료가 됩니다.
7. 향후 전망과 준비 전략
현재 시점에서 GRAS 제도의 최종 형태를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다음과 같은 흐름은 어느 정도 공통적으로 관찰됩니다.
- self-affirmed GRAS는 점점 설 자리가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행정부의 공식 입장과 소비자단체의 비판을 고려하면, “FDA도 모르는 GRAS”라는 구조는 정치·사회적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 통보와 공개는 기본값이 될 가능성이 높다
어떤 형태로든 새로운 GRAS 사용에 대해 FDA 통보와 일정 수준의 정보 공개는 피하기 어려운 방향입니다. - 심사 강도와 preemption 범위는 향후 몇 년간의 핵심 쟁점
강한 사전 심사 체계로 갈지, 통보 중심 완화형 체계로 갈지, 그리고 연방 기준이 주(州) 규제를 어느 정도까지 덮을지가 업계와 소비자단체 사이에서 계속 논쟁이 될 것입니다.
한국 기업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최종 규칙이 모두 확정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드러난 방향성(자기판정 축소, 투명성 강화, 통보·공개 확대)을 전제로 자료 설계와 전략을 미리 조정해 두는 일입니다.
GRAS 제도는 건강기능식품·기능성 원료 개발에서 단순한 규제 체크 포인트를 넘어, 연구 설계와 포지셔닝 전략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입니다. 앞으로도 관련 동향을 꾸준히 업데이트하면서, 실제 원료 개발과 수출 전략에 어떻게 녹여낼지 계속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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