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은 눈부시게 빨라졌지만, 우리의 몸은 여전히 과거의 설계도를 따른 채 살아갑니다. 진화영양학(Evolutionary Nutrition)은 이 간극(진화적 불일치)를 이해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밤늦은 시간, 냉장고 불빛 아래에서 케이크 조각을 집어 든 경험은 누구나 있습니다. 의지의 문제가 아닙니다.
인간의 유전자는 오랜 세월 ‘기회가 있을 때 에너지를 저장하라’는 생존 규칙을 배워왔습니다.
문제는 세상이 너무 빠르게 바뀌었다는 사실입니다. 몸이 기억하는 리듬과 환경이 제공하는 속도가 충돌하면서, 우리는 매일의 식탁에서 작은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유전자의 시간표와 문명의 속도
인류는 약 250만 년 동안 수렵·채집인으로 살았습니다. 농경이 시작된 것은 약 1만 년 전이고, 산업혁명 이후 가공식품이 보편화된 것은 불과 200년 안쪽의 일입니다. 냉장고, 정제 설탕, 배달 앱과 같은 환경은 한 세기도 채 지나지 않았습니다.
진화의 시간표로 보면, 유전자는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고, 환경은 로켓처럼 달려가 버렸습니다. 이 간극에서 현대의 대사질환 문제가 불거집니다.
진화적 불일치, 일상의 얼굴
진화적 불일치(Evolutionary Mismatch)는 “몸이 적응해 온 환경”과 “현재 환경”의 괴리를 뜻합니다. 단맛과 기름진 맛은 과거엔 귀한 신호였지만, 지금은 일상적 과잉입니다.
움직이지 않아도 되는 생활, 언제든 먹을 수 있는 접근성은 우리의 내장된 설계를 쉬지 않고 자극합니다.
핵심: 문제는 유전자가 고장 난 것이 아니라, 환경이 너무 빠르게 변했다는 점입니다.
구석기인의 식탁에서 배우는 핵심
수렵·채집인의 식단은 간결했습니다. 고기와 생선, 뿌리채소, 견과, 열매. 가공식품은 없었고 조리법은 단순했습니다. 칼로리는 낮되, 영양밀도는 높았습니다. 식이섬유와 단백질이 충분했고, 공복과 포만의 리듬이 자연스럽게 유지되었습니다.
현대 식습관에 적용해야 할 포인트
- 가공식품을 최소화하고 자연식 비중을 높입니다.
- 정제탄수화물·설탕 섭취를 줄입니다.
- 식이섬유(채소·통곡물·콩류)와 단백질을 충분히 섭취합니다.
- 칼로리보다 음식의 질(quality)에 집중합니다.
- 식사의 속도를 낮추고, 포만감의 신호를 기다립니다.
과학은 다시, 과거의 식탁을 들여다본다
현대 영양학이 진화영양학에 다시 주목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과거로 돌아가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유전자가 기억하는 방식을 이해하고 이를 현대적으로 구현하려는 시도입니다.
식사의 리듬과 질을 회복하는 것은 유행이 아닌, 우리 생물학과의 화해입니다.
마무리: 과거를 이해해야 지금을 설계할 수 있다
우리는 구석기인의 몸으로 초고가공식품의 시대를 건넙니다. 스스로를 탓하기보다, 몸의 시간표를 이해하는 것이 출발점입니다. 진화영양학은 말합니다.
“돌아갈 필요는 없다. 다만, 이해하고 맞추면 된다.”
다음에는 구석기식 식단(Paleolithic Diet)에 대해 조금 더 자세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단기적인 대사 개선, 장기 근거의 한계, 현대적 절충(지중해식·플렉시테리언·저당 지중해식 등)까지, 과학이 말해주는 범위와 오해를 차분히 풀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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